10년 4월에 내리는 꽃비 - Diary

그렇게 아파하고 힘들어했던... 더웠던 여름이 벌써 10년 전 일이다. 암수가 서로 정다웠다가, 헤어지네, 사네 죽네 했다가 그렇게 또 만나기를 수차례 반복하다가, 그러다가도 손이 닿으면 그 순간들에는 사랑했다가, 결국 서로 사랑하지 않게 된 기억도 거의 10년이 다 되어간다. 뭇 영화나 드라마에 보면 나오는 기승전결이 뻔한 그저 그런 사랑을 해 놓고, 어째서 내 사랑과 이별만 특별나고 유별나고 좀 더 슬프고 좀 더 힘들었을까?

띄엄띄엄 떠오르는 기억에 따르면 그 무렵 나는 애인과의 관계를 포함한 인생 모든 게 힘들었다. 자주 헤어지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고, 끝내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서로 사귀는 암수들이 그러하듯 망설이기만을 반복, 게다가 그때도 지금과 같이 현상유지 하는 것을 어느정도 안정감이 있다면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착한 여자 코스프레라도 하고 싶었던 건지, 애인이 헤어지자고 하기 전까지는 헤어지자고 안하겠다는 다짐이라도 한 것인지, 지금은 기억이 생생하지 않다. 다만 헤어지고 싶다고, 끝내고 싶다고 했던, 그 편지 한장을 보내지 못했던 걸로 봐서는 결국 말로도, 글로도 표현은 커녕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현상유지 하려 했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하하호호 웃으며 잘 지내보려 했을 것 같다. 그렇게 그 글이 작은 상자에 묻어졌다. '타임캡슐' 이라고 작게 연필로 써서 넣었나보다. 그렇게 잊어버리고 다시 잘해보려고 했나보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편지를 한통 받게 되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망설이지 않고 쓰레기라고 부르며 싸대기를 날릴 수 있을 정도의 내용이었는데, 그 뒤로도 우리는 반년을 더 넘게 만나고, 암수가 서로 정다웠다가, 헤어지네, 사네 죽네 했다. 헤어지고도 애증이 남아 있었는 데다가, 섹스 없는, 완전히 헤어져, 미련도 없고, 서로에게서 상처를 받지 않는 경지에 오르는 데는 그로부터도 한참이 걸렸다.

그래서 오늘은 자기반성의 날이다. 때론 삶에서 현상유지가 독이 될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청춘이여, 끝없이 개발하고 계발하라, 라는 말을 빈번히 듣게 되지만 무시해왔던 터다. 그간 쉼없이 배우고 문과 히메가 이과 노가다가 되기도 했지만 그건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였고, 높은 급여를 받고 싶어서였고, 젋었을 때 흔들렸던 인생의 기억이 진저리 나서였다. 그런데 편지 두장으로 과거를 뒤돌아보고 반성을 하게 된다.

만약 그 때 썼던 편지를 묻지 않고 보냈었다면, 우린 덜 정답게 일찍 관계를 정리했을 수도 있다. 서로 덜 상처받고, 덜 오래 힘들고, 매우 일찍 여타 다른 젊은이들처럼 또다시 또다른 사랑을 찾아 서로 훨훨 날아갔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쓰레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얼마 뒤 편지를 받고 쓰레기라 부르며 싸대기를 정말로 날리고 시원하게 헤어졌더라면, 서로 쿨하게 갈길 갔을 수도 있다.

서로 정이 들어 그랬든, 미안해서 그랬든, 현상유지 하지 않았다면, 그저 점차 사랑이 식어서 그랬던 거지 하며 헤어져서 상대방 보란듯이 잘 살아보세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지 못해서 반성한다. 세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전부 다 놓쳤던 과거의 나에게 한번, 위로 겸 격려 삼아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고 싶고, 세번의 기회 중 두번째를 선사한 과거의 남자에게 같은 의미로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고 싶고, 그렇지만 앞으로도 마음먹은 대로 모질게 하지 못할 미래의 나에게도 또 다시 격려 삼아 머리 한번 더 쓰다듬어 주고 싶다.

반성해놓고도 바뀌지 못할 나라서 나에게 대신 사과한다. 미안...그치만 한계절 미만을 함께 보낸 남자가 아니라면 모질게 하는건 힘들어... 아직 문학 히메의 끼가 남아 있어서 그래... 미안, 힘내, 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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